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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가와세 나오미가 도라야키를 내민다. 단팥을 싫어하는 관객도 입맛을 다신다.

영화 | 2015/09/14 | 글. 김수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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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포스터

 

 

가와세 나오미는 언제나 삶과 죽음에 대해 그려왔다. 그것은 대개 자연이 배경이었고(<수자쿠>, <너를 보내는 숲>,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사라소주>), 또는 자신의 가족이었다가(<따뜻한 포옹>, <달팽이: 나의 할머니>),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니시이 카즈오가 병상에서 보낸 마지막 여름(<벚꽃편지>)인 적도 있었다.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를 오가며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던 가와세 나오미가 작가이자 배우,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도리안 스케가와의 소설을 원작으로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완성했다. 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들을 발표해온 가와세 나오미에게 원작의 영화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진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명을 받았어요.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매개체이지만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존재하도록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가와세 나오미가 팥이 끓고 있는 도라야키 가게로 걸어 들어간 이유였다.

 

 

 

△ 가와세 나오미 감독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달콤한 팥소를 넣어 만드는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가게에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의 단팥을 만드는 할머니 ‘도쿠에’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무뚝뚝한 가게 주인 ‘센타로’와 외로운 단골 소녀 ‘와카나’는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인물들로 할머니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순간의 실수로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내고 돌아온 센타로, 그리고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와카나. 자신들의 뜻과는 상관 없이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인물들은 또 다른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생을 보내야 했던 도쿠에 할머니를 만나면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된다. 이처럼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세상으로부터 거절 당한 사람들의 만남을 그린다. “센타로와 도쿠에, 그리고 와카나는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서 처음 만납니다. 세 사람의 삶의 궤도는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이 같은 풍경 속에서 서로 마주치게 됩니다. 삶의 장애에 맞서기 위해 힘을 합치는 영혼들이죠.” 가와세 나오미는 세상으로부터 거절 당한 세 사람의 만남을 통해,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희망에 의지하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주목할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처음 공개된 칸국제영화제에서는 너무 평이한 드라마라는 미지근한 반응이 많았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이야기 전개와 감동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다소 관념적으로 보일 수 있는 –칸을 비롯한 해외 평단에서 주목을 받았던- 전작들에 비해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땅에 발을 디딘 담백한 멜로 드라마로 완성됐다. 실제로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미지근한 해외 평단의 반응과는 달리 일본에서 가와세 나오미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인 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배우 키키 키린이 있었다. 1961년 극단 생활을 시작한 키키 키린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온 일본의 대배우로, 국내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과 오다기리 죠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한 <도쿄타워>로 많이 알려졌다. 키키 키린은 이번 영화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단팥을 만들 때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말을 걸기도 하는 인물인 도쿠에를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비법은 마음을 담는 거에요.” 키키 키린이 연기한 도쿠에가 팥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비법으로 소개한 대사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솔직한 마음을 여과없이 전달한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세상을 듣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살아낼 가치가 있다고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뭉근하게 끓는 도쿠에의 팥처럼 달큰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 이처럼 의아할 정도로 우직하게 삶을 긍정하는 영화를 쉽게 마다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죠. 그리고 어떤 실수들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삶을 이어나갈 힘이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어요!” 뭉근하게 팥이 끓고 있는 도라야키 가게에서 걸어 나온 가와세 나오미의 따뜻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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