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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먹어요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KT&G 상상마당 시네마 <러브 앤 머시>

<러브 앤 머시>와 <인사이드 아웃>에서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꺼내봤다.

영화 | 2015/08/14 | 글. 정우영(< GQ KOREA > 피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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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화 <인사이드아웃> 스틸컷 (아래) 영화 <러브 앤 머시> 스틸컷

 

 

상상력은 <러브 앤 머시>에서 브라이언 윌슨에게 벌어지는 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면 벼락처럼 멜로디가 떠오르고, 괴상해 보이는 아이디어도 그의 손을 거치면 조화로워진다. 마법과 다르지 않아 보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양보해서, 브라이언 윌슨처럼 사람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부류까지는 아니어도 비범한 재능의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고 회자된다.

 


하지만 픽사는 사내 대학 건물에 새겨져있다는 라틴어 ‘Alienus no diutius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를 통해 다른 얘기를 한다. 픽사는 강력한 리더가 이끌어온 20세기의 여타 회사들과 달랐다. 작가와 애니메이터, 감독, 스태프가 동등한 위치에서 작품에 대해 협의했다. 다른 회사라고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이상적인, 그러니까 비현실적이고 예외적인 사례로 받아들였다는 걸 증명하듯 잘못된 접근을 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직장동료끼리 ‘~님’이라고 부르거나 ‘제임스’ 같은 영어 이름으로 부르면서 사내의 수평적 관계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창의적인 일을 할 때의 개인은 북돋워야하는 존재이지, 평준화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픽사는 개인에게 회사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를 줬고, 스톡옵션 등의 후한 보상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토이 스토리>를 제작한 애니메이터의 3/4은 소프트웨어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이었다고 전한다. 픽사는 “CG 기술을 엄격히 애니메이션 예술을 수행하는 도구로 정의”하고, 기본적으로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픽사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당연히 픽사에는 자신의 일이 산업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모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할 가능성은 그 반대에 비해 높았다. 게다가 픽사는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기업 경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상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의 가치가 발견되고 전개되기 전에 사장되거나 잊힐 뿐이다. 상상력을 기상천외한 이벤트로 정의하는 사회에서 상상력은 늘 해프닝에 그친다. 해프닝이 나쁜 건 아니지만, 새롭고 낯선 것은 사람들이 비웃거나 눈 돌리기 쉽다. 상상력이 해프닝으로 단순화되는 사회에서 강력한 리더가 득세한다.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그 리더를 만든다. 

 

 

 

 

 


강력한 리더가 이끌지 않는 조직, 픽사에서 최근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내놨다. 인간이 가진 감정에 인격을 부여한 작품이었다. 라일리라는 소녀의 내면에 사는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가 그들이다. 의인화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시적 방법론이다. 인격을 가진 감정이 그리 대단한 상상력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픽사가 놀라운 이유는 그 세계를 조직해나가는 정당성에 있다. 극중의 기쁨이가 슬픔이와 꼭 붙어있다는 건 뭘 의미할까. 각각의 감정이 여전히 살아있어도 동력을 잃었을 때, 감정과 인간 사이에 장애물이 있을 때 인간이 무감각해진다는 건. 무감각해진 인간에게는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기쁨이가 아니라 그 처지를 아주 잘 아는 슬픔이가 필요하다는 건.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에 대한 상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그들에게는 상상력이 아니라 상상력이 헛되지 않게 쌓아올리는 탑이 중요하다. 

 


또한 픽사는 이 탑을 정연하게 쌓지 않는 게 올바르게 탑을 쌓는 방법이라는 걸 안다. 마치 인간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하지 않으면서부터 진정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듯이. <인사이드 아웃>의 세계에서는 여러 가지 기억 중에서도 핵심 기억이 있고, 그 핵심 기억은 각각 다른 인격의 원동력이 되며 섬의 형태를 띤다. 엉뚱섬과 정직섬이 있는 가운데, 라일리가 즐기는 하키로부터 비롯된 ‘하키섬’이 눈에 띈다. 때로는 엉뚱한 사람이나 정직한 사람이라는 설명보다 ‘하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그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주며, 인간은 무슨 이론으로 정립할 수 없이 인격과 취향과 사건과 우연이 뒤섞인 채 앞으로 나아간다는 걸 보여준다. 인간은 빙봉 같은 가상의 존재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또 잊어버렸다가 다시 그리워하는 존재다.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빙봉은 필요하다. 빙봉이 아닌 다른 대체재를 찾으면서 지속할 뿐이다. 픽사는 빙봉을 만들어내고, 빙봉의 희생을 통해 그와의 이별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빙봉은 사라져가고 사람들은 대체물을 찾아 헤맨다. 픽사는 여느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그렇듯이 마지막에 빙봉을 살려내지 않는다. 빙봉을 살려내는 건 라일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러브 앤 머시>에서 브라이언 윌슨은 멜린다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나서 “당신을 봤을 때 떠오른 악상이에요”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녀가 이 노래로 뭘 할 거냐고 묻자 그는 대답한다. “아무것도요. 날아갔어요. 당신만 듣고요.” 상상력에는 날개가 있다. 상상력에게 지상이 더 재미있는 곳이라고 최대한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할 사람은, 우선 자기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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