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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없는 시티

영화 <프란시스 하>

우디 앨런, 에릭 로메르, 그리고 섹스를 뺀 캐리 브래드쇼

영화 | 2014/07/30 | 글. 김수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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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란시스하> 공식 포스터


 

 

<오징어와 고래>, <마고 앳 더 웨딩> 등을 연출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작품으로는 처음 국내 극장에 정식으로 소개된 <프란시스 하>가 개봉 열흘만에 4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국내에서는 예술영화시장에서 조차 '웨스 앤더슨 세컨드' 취급을 받으며 줄줄이 DVD행을 면치 못한 노아 바움백 감독이나, 서울의 한 예술영화관을 통해 개봉한 <방황하는 소녀들>로 단 44명의 관객을 만났던 주연배우 그레타 거윅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프란시스 하>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시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이에게는 이미 느껴본 감정, 어떤 이에게는 지금 나의 처지인 프란시스의 이야기가 공감을 얻은 것이다. 타임라인에 영화 제목만 검색해봐도 줄을 잇는 감상평들은 영화의 홍보 카피였던 ‘가장 보통의 뉴욕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여기 서울에서도 적중했음을 상기시킨다. 무용수로 성공하고 싶지만 현실은 몇 년째 견습생 신세인 프란시스의 이야기는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이 주고받은 이메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대해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중에 “ATM에서 수수료를 내나?” 같은 사소한 에피소드들이(ATM 수수료 장면은 <프란시스 하>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쌓여 프란시스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이 함께 완성한 시나리오는 둘도 없는 친구 소피와의 우정은 “내가 속상한 건, 네게 애인이 생기면 재미있는 일이 생겨도 넌 그 사람한테만 얘기할 거고, 난 못 듣는단 거야.”, 직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같은 대사들을 통해 프란시스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



 

 

기시감은 비단 캐릭터에 대한 공감에서 그치지 않는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며 (이젠 뉴욕을 벗어나 영화를 찍고 있긴 하지만) 우디 앨런식 속사포 대사들을 떠올리고, <400번의 구타>를 비롯한 영화음악들이 곳곳에 그대로 인용된 점을 들어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를 배경으로 차이나타운을 질주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영락없이 레오 까락스 감독의 <나쁜 피>에서 가져온 장면이기도 하다. 또 노아 바움백 감독은 인터뷰에서 에릭 로메르 영화로부터, 정확하게는 에릭 로메르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차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각본 작업을 시작할 당시 에릭 로메르 영화에 등장하는 재밌지만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그런 여자를 염두에 뒀다.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여자말이다." 재밌지만 어딘가 이상해 보이고,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우디 앨런식 수다까지 가능한 여자라면 일찍이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가 있었다. 캐리가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이미 성공한 30대 여성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란시스 하>는 “내가 밥 굶고 <보그> 최신호를 샀던 여자”라고 회고한 캐리의 20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는 있다. <보그>말고도 캐리에겐 있고, 프란시스에겐 없는 것. <프란시스 하>의 부제를 단다면 <섹스 없는 시티>(Undateable and the City)도 제법 어울릴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연애와 우정, 칼럼니스트로 살아가는 캐리를 보여주지만 결국 뉴욕 맨하탄에서 방 한 칸을 지키며 사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가 하면 <프란시스 하>엔 소피와의 우정과 무용수로서의 삶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마음 따라 주머니 사정 따라 이 방 저 방을 전전하는 이야기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여자의 이야기였다면, <프란시스 하>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우편함과 마침내 방 한 칸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렇게 프란시스(들)은 캐리가 된다. 비극의 정점을 찍는 곳이 프랑스 파리라는 점도 유사하다. 즉흥적으로 떠난 파리에서 프란시스와 캐리는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무엇보다 <프란시스 하>와 <섹스 앤 더 시티>는 주인공처럼 구는 ‘진짜 주인공’을 보는 재미가 있는 극이다. 극중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건 누구보다 프란시스와 캐리 브래드쇼가 가장 잘 알고 있다.(주인공답게 <프란시스 하>의 모든 신엔 프란시스가 등장한다.) 영화의 말미에 프란시스가 자신의 반쪽짜리 문패를 갖게 된 것처럼, 이제 그녀에겐 없고 캐리에게 있는 딱 한 가지 역시 가질 수 있게 되길. 굿 럭, 프란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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