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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뻬와 함께 파리에서 뉴욕까지

장 자크 상뻬(Jean-Jacques Sempé)

상뻬의 작품 주인공들은 항상 주변과 어우러져 있다. 태초에 홀로 존재하는 이는 없고, 우리 모두는 주변과 관계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시각예술 | 2016/05/23 | 글. 김하영 (이야기경영연구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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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머 씨 이야기 L'histoire de M. Sommer, 1991, 펜, 잉크와 채색, 45ⅹ34cm

 

 

사람은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우와아아아앙!”

 

운다. 다시 말해, 먼저 ‘말’을 한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듣는다. 말을 듣고,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며 언어라는 체계를 습득한다. 그 다음은? 글을 쓸까? 아니다. 그림을 그린다. 아이의 손에 크레용을 쥐어주는 순간 마룻바닥이며 벽이며 냉장고며 집안의 아이 손 닿는 평평한 곳은 스케치북으로 변한다. 그렇다 인류는 태초에 글을 쓰기 훨씬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 가장 오래된 문자는 가장 오래된 벽화에 비하면 아주 오랜 후에 등장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펜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문자를 쓰는 데 익숙하다. 그나마 손에 펜을 쥐고 문자를 기록하던 때에는 끄적끄적 낙서라도 했지만, 손에서 펜이 사라지고 컴퓨터 자판의 키보드나 스마트폰의 키패드에 익숙해진 뒤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더욱 삶에서 멀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아주 특별한 재능으로 인식되고 있다.

 

장 자크 상뻬(Jean-Jacques Sempé).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작가 중 한 명임이 분명하다. 『꼬마 니콜라』, 『좀머 씨 이야기』의 작화, <뉴요커>의 표지작가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이 서울 한복판 갤러리의 벽에 잔뜩 걸렸다. 그는 ‘우앙’ 울음을 터뜨리면서부터 이런 훌륭한 작가였을까?

 

1932년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겪어야 했던 상뻬는 어릴 때부터 항상 ‘생계’를 위해 투쟁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비도 제대로 낼 수 없어 14세에 학교를 떠난 그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지원한 우체국, 은행, 철도 등에서 모조리 떨어진 후 집집을 돌면서 치약을 팔아야 했고, 자전거 짐꾼 생활을 했다. 그는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군대에 가야했다. ‘일자리와 잠자리’ 때문이었다.

 

고단한 그의 현실에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어느 재즈 악단의 선율이었다. 악단의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그에게 음악을 배우는 것은 사치였다. 대신 악단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생계 수단이 된다. 그는 “방세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그려 팔아야 했다”고 한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 그에게 어느 광고 회사 직원은 “자네에겐 만화가 더 어울리겠어”라고 조언했다. 상뻬는 간결한 만화풍의 기법을 연습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샤발’(Chaval)이라는 작명으로 활약하던 삽화가에게서 <뉴요커>라는 잡지를 알게 되고 ‘풍자화’의 세계로 방향을 잡는다.

 

그림이 생계였던 그는 정말 많은 작품을 그렸다. 1951년 잡지 삽화가로 데뷔한 이후 1960년 <꼬마 니콜라> 출간을 시작으로 출판된 작품집만 40종이 넘고, 작업한 삽화는 수백만 점이 넘는다. 그리고 무명 시절 영감을 받고 목표로 삼았던 <뉴요커>의 작가가 돼 100편이 넘는 표지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꿈꾸던 잡지의 표지 작가가 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 상뻬의 어린시절 Enfances, 2011, 펜, 잉크와 채색, 49ⅹ39.5cm

 

 

『꼬마 니콜라』, 『좀머 씨 이야기』의 삽화 이미지가 강했던 관객들은 이번 전시에 집중돼 있는 파리와 뉴욕 드로잉 작품들에 신선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동화적인 소품보다 큰 폭의 풍경화에 더 큰 울림이 있다. 그리고 어딘지 묘하게 친숙하다. 그의 작품 성향 설명에 흔히 쓰이는 ‘따뜻하다’는 수식어와는 다른 느낌의 무엇이다.

 

그 느낌의 근원은 “동양화적”이라는데 있다. 서양의 회화 중 카툰 계열의 작품이 ‘동양적’이라는 평가를 얻곤 한다. 붓 터치에 의한 면 중심 구성이 아닌, 펜에 의한 선 중심의 구성 때문이다. 상뻬는 특히 다른 서양 카툰보다도 더 종이의 흰 여백을 잘 활용하기에 동양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상뻬의 작품은 그 이상의 미학적 관점을 담고 있으니, 바로 ‘관조’의 미학이다.

 

파리와 뉴욕 스케치 등에 나타나는 상뻬 작품의 특징은 풍경에서 인물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산수화(山水畵)의 필수 요소는 ‘산’과 ‘물’이다. 선인들은 금강산과 묘향산 등 절경을 그리며 폭포나 강과 같은 물을 함께 그렸다. 여기에 하나 더 포함된 요소가 사람이다. 김홍도의 ‘옥순봉’이라는 작품을 보자. 기암 절벽 아래 강이 휘돌아 흐르고 강에는 선비 셋이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람이 없더라도 정자(집)를 꼭 그려 넣었다. 마치 그림을 보는 이가 산수화 속에 빨려 들어가 작중 인물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다.

 

 

△ 뉴욕의 상뻬 Sempé à New York, 2009, 펜, 잉크와 채색, 48ⅹ58.5cm

 

 

상뻬의 스케치를 보자. 뉴욕의 마천루 풍경 속에, 센트럴파크의 조형물 아래, 항상 누군가가 걷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리 도심의 집회 풍경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려진 풍경 속에서도 특정 인물에 하이라이트를 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상뻬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상뻬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무대를 그릴 때도 주인공보다 무대 뒤의 장치 스태프를 더 비중 있게 그린다. 그의 작품 주인공들은 항상 주변과 어우러져 있다. 태초에 홀로 존재하는 이는 없고, 우리 모두는 주변과 관계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변은 타인 뿐 아니라, 건물과 창문, 의자와 벽난로와 같은 모든 사물을 아우른다. 이를 통해 상뻬는 한 폭의 그림 안에서 인물과 풍경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나’라는 자아는 본디 세상 만물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동양적인 ‘관조’의 미학인 것이다.

 

풍자화의 굳건한 전통 중 하나가 ‘사회 비판’이다. 덕분에 상뻬는 종종 ‘정치적’ 혹은 ‘사회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이에 대해 상뻬는 “가벼워지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다”고 답한다. 동양의 도교 선인들은 한없이 가벼워지고자 했던 이들이다. 상뻬 본인은 알고 있을까. 그의 작품들이 동양 철학에 닿아 있다는 것을. 우리 DNA 속에도 이런 동양적 미학이 새겨져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상뻬의 작품은 우리에게 편안하게 읽혀진다.

 

우리는 모두 ‘우앙’하며 태어나 크래용을 쥐고 그림을 그렸다. 바삐 사는 동안 그림 그리는 법은 잊었을지언정, 여전히 그림을 보는 눈과 사유하는 능력은 여전하다. 미디어가 발달하며 손바닥만한 작은 스마트폰 안에 이미지와 콘텐츠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PC 모니터와 스마트폰이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질감과 공간감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상뻬의 작품이 계속 전시되는 이유이다. 상뻬의 작품은 출판물을 통해 많이 접할 수 있지만, 벽에 걸려 있을 때 느낌은 다르다. 상뻬의 철학을 온전히 느끼고자 한다면 지금 갤러리로 가시라. 니콜라와 좀머 씨는 잠시 잊고, 상뻬가 이야기하는 파리와 뉴욕의 풍경 속에 빠져 들어간다면 1시간이든 2시간이든 전시를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 모든것은 복잡해진다 Tout se complique, 1963, 펜, 잉크, 80ⅹ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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