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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에서 생긴 일

제8회 KT&G 스코프 올해의 작가 노기훈 <1호선>전

1호선을 따라 기록한 풍경과 사람.

시각예술 | 2016/03/23 | 글. 안수연 (KT&G 상상마당 전략기획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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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을 따라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3월 18일부터 4월 22일까지 제8회 KT&G 스코프(SKOPF, Sangsangmadang Korean Photographer's Fellowship) 올해의 최종작가 노기훈의 ‘1호선 (Line 1)’ 전이 서울 KT&G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열린다.

 

 

 

△ 제8회 KT&G 스코프 올해의 최종작가 노기훈 <1호선>전 포스터

 

 

 

 

이번 <1호선>전은 노기훈 작가가 2013년부터 지하철 1호선의 인천-노량진 구간을 걸으며 기록한 사람과 사물, 풍경 사진 20여점을 내건다. 작가는 작업노트를 통해 인천에서 처음 1호선을 탔을 때 받았던 인상을 밝히며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가고 사진은 남는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이며 ‘그저 사진을 찍고 찍히는 관계에 서는 것’이라는 작업 동기를 밝혔다.

 

제8회 KT&G 스코프의 심사위원장인 오형근은 노기훈의 사진을 “사뭇 감상적이거나 치우치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풍경을, 무덤덤하고 거리감있게 바라본다”며 “온갖 개인적 시선이 난무하는 오늘날, 사진 예술의 다큐멘트성을 담대하게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심사문을 통해 평했다.

 

KT&G 스코프는 전도유망한 젊은 사진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KT&G 상상마당의 대표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2008년부터 매년 지원을 이어가며 현재까지 노순택, 김태동, 정지현 등 30여명의 사진작가를 발굴했다.

 

이번 전시를 여는 노기훈 작가는 지난 2015년 5 월 2015 KT&G 스코프 올해의 작가로 선발되어 약 7 개월간 멘토링과 지원을 받았다. 지난 12 월 진행된 공개 포트폴리오 리뷰와 심사위원 심사를 통해 올해의 작가 3인 중 최종 작가로 선발되었다.

 

노기훈 작가는 2015 스코프 올해의 작가인 김성수, 김흥구와 함께 ‘사진미래색 2016’ 전시도 오는 12월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참가할 예정이다.

 

유망한 차기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제9회 KT&G 스코프가 오는 4월 1일부터 10일까지 포트폴리오 접수를 진행한다. ‘올해의 작가’로 선발되는 3명의 작가는 멘토링, 작품 제작비 등이 지원된다. 7개월간 멘토링 이후‘올해의 최종 작가’1인으로 선발될 시 KT&G 상상마당 갤러리 개인전, 작품집 제작 등이 지원되므로 도전해보길 권한다.

 

 

ⓒ 노기훈, 인천-동인천 화교 3세

 

 

ⓒ 노기훈, 부평-부개 수집장

 

 

 


□ 작업노트


 

1호선


 

8th KT&G SKOPF 올해의 최종작가 노기훈

 

2013년 인천에 새 터전을 마련하면서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낡고 더럽고 눅눅한 파란색으로 상징되는 1호선은 최초의 철로를 달리는 구식 열차라는 점, 인천에서 출발하여 구로를 지나 서울역과 종로를 통과하는 열차라는 점 때문에 다른 지하철 노선에 비해 낙후된 이미지였다.


서울에서 인천을 가자면 용산역에서 급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딘가 모자란 표정을 짓고 있다가 텅 빈 지하철 문이 열리면 질주하듯 빈 자리를 찾아간다. 운이 좋아 곰팡내 묵은 군청색 벨벳 시트에 앉으면 일찌감치 10량 객차의 중반을 건너온 앉은뱅이가 가지런히 모은 나의 무릎 위에 구구절절 사연이 적힌 쪽지를 버리듯 놓고 지나간다. 분명히 나와 함께 용산역 플랫폼에 서서 기다리던 그 사람이 맞는지 눈을 돌려 확인한다. 그가 바닥을 쓸고 지나간 후 조금 쉴 만하면 하나님을 외치는 신도가 들어와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지껄이고, 뒤이어 계절에 따라 품목을 달리하는 행상인이 등장해 목청 높여 떠들다 옮겨 간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어서 이 시간이 흘러 도착지에 이르기만을 기다린다.


지하철 1호선은 노량진역에서 인천역까지 지하로도 터널로도 지나가지 않아 날씨가 변하는 대로 계절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객차를 점유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비춘다. 차창 밖 풍경 역시 열차 속도에 맞춰 빠르게 사라지며 매혹적인 추상화로 변신한다. 풍경에 지쳐 갈 때쯤 다시 객차 안으로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현실의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멀뚱히 허공을 응시한다.

 

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미국산 모갈(Mogul) 증기기관차가 노량진을 출발해 제물포까지 33킬로미터 구간을 질주했다. 대한제국이 철도 시대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20세기 초 일제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된 경인선은 서구 문물이 한반도 중심부로 유입되는 통로였다. 1960년대부터는 수출 주도 정책이 추진되면서 산업화 도시화의 중추로 탈바꿈한다. 마침내 1974년, 경인선 전철화 사업으로 지하철 1호선이라 명명되며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광역 도시권의 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경인선은 아직도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철로 개통 당시에 들어선 역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도시를 묘사한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는 동안 1호선은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하나 둘씩 떨어뜨린다. 열차가 인천역으로 가까워 갈수록 건물들은 낡고 낮아진다. 객차에는 맥아더 동상을 보러 가는 할아버지들이나 한국말과 중국말을 기묘하게 섞어 쓰는 화교처럼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사람들만 남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가 되어 빠져나온다. 1호선에 탄 사람들은 단지 동시대의 풍광이 되어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어깨를 부딪치며 옆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던 사람들은 인천역 플랫폼을 벗어나 재빨리 어디론가 흩어져 간다. 그들을 뒤쫓아 철로 주변에 펼쳐진 삶을 만난다. 화교들은 차이나타운의 목조 주택으로 들어가고 할아버지들은 자유공원을 찾는다.
시대는 풍경을 만든다.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근대 문물은 풍경을 낳았으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쓸모를 달리하면서, 지금도 21세기 초반이라는 시간 배경 아래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 중이다. 서울인지 인천인지 모를 공간에 멈춰 앉아 백 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제물포에 닿으면 경성에서 호명받지 못한 이름들이 서울로 향한 루트를 따라 나름의 삶을 갖추며 산개해 있다. 인천역에서 노량진까지 26개 역을 걸으면 우연인 듯 인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차창에서 미끄러진 시대의 풍경들이 장소와 시간을 갖추고 분명한 형태를 갖춘다. <1호선>은 한강철교가 준공되기 전인 1899년 당시 경인선을 따라 인천과 노량진 사이에 있는 26개 역을 걸어 다니며 철로 곁을 떠다니는 인간 군상과 일상 그리고 풍경을 촬영한 사진 도큐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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