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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주고 사랑 받는

KT&G 상상마당 20세기 거장 시리즈 두 번째, 포스터 아티스트 레이먼 사비냑 기획전 – ‘비주얼 스캔들’

화창하고 무더운 날, 레이먼 사비냑의 큼직한 포스터를 봐야겠다. 단순하고 명랑한 웃음이 나오니까.

시각예술 | 2015/05/14 | 글.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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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사비냑(Raymond Savignac)은 20세기 초반에 왕성히 활동했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광고포스터 작가다. 사비냑이 포스터만으로 상품을 널리 알린 만큼, 그를 소개하는 가장 명료한 방법 또한 그의 포스터를 보여주는 것일 테다. 레이먼 사비냑은 1949년에 프랑스 비누 브랜드인 몽사봉(MONSAVON)의 광고포스터(‘monsavon au lait’)를 만들어 유명해졌다. 그의 나이 마흔 한 살 때다. 사비냑은 종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몽사봉 비누에 그려진) 암소의 젖으로부터 41살의 나이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난’ 사비냑은 스타가 됐다. 그는 무수히 많은 산업 분야의 광고작업을 척척 해냈다. 에어 프랑스(Air France), 시트로엥(Citroën), 베스파(Vespa), 빅(Bic), 오랑지나(orangina), 페리에(Perrier) 등 인지도 높은 브랜드의 광고를 도맡았고, 당시 프랑스가 주최하는 축제, 기획전의 홍보 포스터에서도 사비냑을 찾을 수 있었다.

 


▲ Monsavon au lait, Raymond Savignac, 1949

    


▲ Bic Spectacles, 1963

 

사비냑은 1907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했다. 사비냑은 어린 시절 카페와 식당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15살 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제도사 일을 시작했다. 파리교통공사의 전신인 TCRP(Compagnie des Transports Parisiens)에서 사비냑이 했던 일은 버스 지도에 색을 칠하는 등의 소소한 것들이었다. 사비냑은 우연히 동료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다 스스로 재능을 발견했다. 퇴근 후 저녁이 되면, 사비냑은 그림을 그리거나 산업디자인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1929년 군복무를 마친 사비냑은 여러 광고 회사를 전전했다. 어렵사리 작업을 이어 나갔지만, 포스터 작업이 마땅한 직업이 된 것도 아니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사비냑은 1933년 당시 프랑스 그래픽연합(L’Alliance Graphique)의 예술원장이었던 카상드르(Cassandre)를 찾아갔다. 와인 뒤보네(Dubonnet)의 광고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카상드르는 20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광고포스터 작가다. 사비냑은 카상드르에게 자신의 포스터 디자인 계획서를 보여주었다. 인연이 이어져 사비냑은 본격적으로 포스터 디자인 작업에 정착했다. 1938년 카상드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지냈다.

  

카상드르가 떠나고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사비냑은 다시 여러 회사를 떠돌았다. 전쟁도 전쟁이지만, 그가 더욱 견디지 못했던 건 극심한 관료주의였다. 그러던 중 사비냑은 버나드 빌모(Bernard Villemot)를 비롯한 젊은 작가들을 동료로 맞아 함께 작업하게 된다.

  

2014년 5월 상상마당에서 전시했던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와 마찬가지로 레이먼 사비냑 역시 전후 1950년대가 전성기였다. 로베르 두아노가 도시의 동력이 되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다면, 사비냑의 광고포스터는 도시의 동력 자체였다. 사비냑은 포스터로 사람을 움직였다. 사람들이 광고를 기억해 브랜드가 알려지고 상품이 잘 팔렸다는 말도 되지만, 사비냑의 포스터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사비냑은 포스터란 단순히 발상을 그래픽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대중에게 알리는 낙관적인 메시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살아있는 포스터를 원했다.

  

 

▲레이먼 사비냑, 사진은 모두 로베르 두아노가 찍었다.

 

이번 전시 제목인 ‘비주얼 스캔들(Visual scandal)’은 레이먼 사비냑이 1950년에 주창한 표현이다. 비주얼 스캔들은 따로 떨어진 두 개의 이미지가 결합하면서 뜻밖의 이미지가 하나 만들어지고, 사람의 의식 내부에서 강하게 작용하거나 기억되는 수법을 뜻한다. 두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녹여내는 것은 레이먼 사비냑의 장기다. 그의 포스터에서 사람과 사물(동물)은 교류한다. 적극적으로 교류하다 사이가 허물어지거나 두 사물이 동화되거나 서로 물들기도 한다. 1970년 사비냑이 디자인한 에어프랑스의 광고에는 스스로 비행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비행기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광고에는 불어로 ‘I fly, so I am (J’y vole, donc j’y suis)’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1993년 역시 사비냑의 한 와인 광고포스터에는 남자와 유모차, 큰 와인이 그려져 있다. 남자는 앞치마를 하고 유모차를 끌고 있다. 유모차에는 아이가 아닌 와인이 실려 있다. 더구나 남자의 머리는 포도 한 송이로 묘사됐다. 포도가 모체가 된 와인을 간명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강조한다. 사비냑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광고 포스터를 만듦으로써 차마 생각할 수 없었던 것,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했다.

    

사비냑의 포스터에선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움직이는 물체를 만나 하나의 불완전한 꼴이 되기도 한다. MAGGI는 영국의 즉석식품 브랜드다. 1950년 사비냑이 디자인한 광고에는 이미 수프의 재료가 된 소(고기)가 수프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 광고할 소고기 수프를 소마저 좋아하는 양상이다. 불어로 ‘나는 Avi 3000과 함께 굴러간다 (JE ROULE AVEC Avi 3000)’라고 쓰인 포스터는 1985년에 사비냑이 디자인한, Avi 3000이라는 페인트 광고다. 페인트 통은 오리의 몸이 되었고, 둥글고 납작한 페인트 붓은 오리의 부리와 다리로 들어갔다. 노랑, 초록, 파란색 페인트는 오리의 깃털 색이다. 이처럼 레이먼 사비냑의 광고포스터는 천연덕스럽게 귀여운 면이 있다. 포스터에 그려진 인물, 동물, 혹은 사물까지, 모두 어딘가 느긋해 보인다.

 

‘레이먼 사비냑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사비냑의 유머러스한 그림은 아마 그의 개그 취향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사비냑은 미국 코미디 영화, 특히 찰리 채플린을 좋아했다. 그의 목적은 포스터에 익살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통달은 실수의 총합. 나는 나의 결함을 이용한다.” 2001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비냑이 한 말이다. 찰리 채플린은 실수와 엉성함을 재주로 뒤바꿨다. 사비냑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채플린 영화의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상상마당의 이번 전시는 작년 로베르 두아노 전시를 잇는 20세기 거장 두 번째 순서다. 전시는 1950-60년대, 1970년대, 1980년 이후로 나뉜다. 전성기 시절 사비냑의 원화 작품 100여 점 및 동영상, 사진을 국내에서 처음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기간 중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니 서둘러 볼 만하다. 5월 15일부터 24일까지는 스승의 날을 기념해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교원증을 보여주면, 교사 본인과 학생 2명이 함께 무료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 관람료는 7천원이다. 작가의 작법을 체험해 보는 연계 교육프로그램도 개설된다. 전시 기간인 8월 30일까지 그래피티, 캘리그라피,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등 총 열네 과목의 레이먼 사비냑 관련 강좌를 운영한다.

 

▲Savignac a Trouvill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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