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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 사물의 그림자

제7회 KT&G 스코프 올해의 최종작가, 권도연 ‘고고학’ 전

스코프의 꿈은 같이 꿈 꿀 사진가를 찾는 것이다.

시각예술 | 2015/03/26 | 글.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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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상상마당의 한국사진가 지원 프로그램인 스코프(SKOPF)는 왜 사진을 보는지, 왜 사진으로 보는지, 어떻게 하면 다르게 볼 것인지 함께 고민할 작가를 찾는다. 고민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갈 작가를 원한다. 또한, 사진가라면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할 신선한 재치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로써 진지한 사진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 사진의 전달방식까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상이 스코프가 2014년 3월에 개정한 새로운 선언이다. 스코프는 2008년에 처음 시작해, 지난 6년 동안 사진을 수용하고 소통하는 문화가 변화하는 것을 바라봤다. 이번 7회부터 스코프는 함께 변화하고자 했다. 필요치 않은 말로 자신의 사진을 해석하는 요즘 작가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 다시 고친 선언을 적용해 스코프 지원작을 심사했다. 권도연이 스코프 7회 최종작가로 선정되었다.

 

△ 권도연 <고고학>전 포스터

 

 

권도연은 고등학생 때 고전문학에 빠져지냈다. 특히 볼프강 보르헤르트와 안톤 체호프의 글을 탐독했다. 문학을 사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에서는 독일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에서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사진집을 보고 일찍이 문학에서 겪어보지 못한 미시감을 느꼈다. 권도연은 그의 체험과 표현을 연결해 주는 도구로 펜이 아닌 카메라를 택했다. 사진 작업이 한창이던 2008년, 블로그(http://blog.naver.com/yasziro)에 남겨놓은 권도연의 일기엔 “문학을 전공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고 써있다. 그가 사진을 찍을 때 지식과 개념을 받아들이기 위해 되짚어 생각하고, 곱씹는 배경에는 여하튼 문학이 있다. 그는 스스로 파악한 의미를 사진으로 ‘쓴다.’

 

 

 

△ 권도연, 애송이의 여행 

 

<애송이의 여행>은 권도연의 2011년 작품이다. 존경하는 은사이자 시인인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사진에 담았다. 시집의 한 쪽 부분을 오려 새싹을 틔웠다. 다른 사진에서는 새싹만한 크기의 종이 비행기가 보인다. 종이 비행기가 하늘로, 음악 CD로, 벽으로 날아가고 있다. 싹이 트듯, 종이 비행기가 바람을 따르듯 권도연은 찰나에 떠오른 기억이 어떤 경로를 거쳐온 것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권도연에게는 뭘 찍을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스코프에 참여하던 시기에 권도연은 폐지처리장에서 파쇄를 기다리고 있는 사전 여러 개를 수집해 사전의 글자와 삽화를 뜯어냈다. 다시 엮인 사전은 오직 하나뿐인 권도연의 <개념어 사전>이 되었다. <개념어 사전>은 ‘연보’라는 단어를 ‘왜 우리는 실패할까(why we fail)’라고 풀이한다. ‘환절기’라는 낱말은 ‘짧은, 서두르는, 허둥대는’이라는 뜻의 ‘hasty’로 해석되며, 여러 얼굴이 포개진 기이한 그림이 말의 의미를 보충한다.

 

 

 

 

△ (위) 개념어 사전_연보, Pigment print, 100x100cm, 2014  (아래) 권도연, 개념어 사전_11월, Pigment print, 100x100cm, 2014

 

 

<개념어 사전>은 권도연이 스코프에 참여하던 시기인 작년 9월 말에 마무리되었다. 그는 스코프의 심사위원인 이영준의 도움을 받으며 다음 작업을 모색했다. <개념어 사전>이 말로 뭉쳤다면, 다음 작품 <고고학>은 의미를 잃은 덩어리의 집합이다. 권도연은 <개념어 사전>의 연작을 만들기 위해 버려진 사물을 수집했다. 일그러진 사물들은 애초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물 사이에 텅 빈 마음과 충만한 사유가 교차한다. 덩그러니 놓인 사물은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권도연은 앞으로도 <고고학>을 계속 진행하면서 사물의 세계에 대하여 우직하게 탐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 (위, 아래) 권도연, 고고학, Pigmentprint, 135x105cm, 2015

 

스코프에 참여하기 전까지 권도연은 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작업을 봐주는 이가 없었다. 고인이 된 몇 명의 소설가들을 가상의 관객으로 설정하고 마음속으로 그들과 작업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는 스코프를 하면서 멘토 이영준과 사진 작업에 관해 대화를 지속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진에 접근할 수 있었다. 권도연은 자신을 가리켜 미완의 작가라고 말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새로워질 수 있다고 자부한다. 권도연은 꿈을 키웠다. ‘궁극적으로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제껏 존재해 본 적이 없는 시선, 다른 기술, 다른 방법을 가진 사진을 상상해 봐야 할 것이다. (…) 스코프는 꿈을 위한 모색과 연구, 작업의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되기 바란다.’ 스코프가 내놓은 새로운 선언문의 맺음말이다. 스코프의 바람은 이루어졌고, 작가의 꿈은 커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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