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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독창적인 사람

사진가 랄프 깁슨의 세미나 < All About Ralph Gibson >

로버트 프랭크의 한마디가 랄프 깁슨을 바꿨다. 세미나에 모인 사람들도 뭔가 달라졌을 것이다.

시각예술 | 2014/09/29 | 글. 박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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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능은 어디까지일까? 사건을 포착해 기록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사진가들은 이 규범을 굳게 따르거나 아예 전복시킨다. 랄프 깁슨은 후자다. 사진의 전통적인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상상,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그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초현실주의는 현실과 동떨어진 미지의 세계는 아니다. 어떤 상황을 새롭게 만들어내거나 장치를 통해 변형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방에 걸려있던 블라인드, 자신이 아끼는 기타, 해변에 누운 부인의 옆모습을 찍을 뿐이다.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 많은 정보를 지워버리는 기하학적 구성과 명암의 전도를 통해 그만의 초현실적 세계를 구축한다. 랄프 깁슨의 독창적인 결과물은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으로부터 시작된 20세기 현대사진의 맥락에서 두드러진다.

 


현재 랄프 깁슨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신관에서 < Ralph Gibson 랄프 깁슨 > 개인전(8/12~11/19) 을 진행 중이다. 국내외 유명 작가를 초빙하여 양질의 세미나를 열어온 상상마당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지난 9월 25일, 작가와 대중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다. < All About Ralph Gibson >이라는 주제 아래 랄프 깁슨과 70명의 참가자가 만나 그의 작품세계, 사진의 형식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랄프 깁슨이 직접 슬라이드를 넘기며 자신의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의 첫 카메라는 라이카였다. 사람을 그리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고, 목돈이 생긴 날 바로 구입했다. 로버트 프랭크의 < The American >이 발간되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도 좀 거친 다큐멘터리적인 작업을 하길 원했다. 의식하면서 찍은 초기 작품 중에서, 반은 흰색 반은 검은색으로 채워진 사진은 아직도 많은 수집가들이 찾고 있다. “여러분 부디 학생 시절에 찍은 필름을 소중히 여기세요. 수집가들이 좋아하는 그 사진은 생각 없이 버린 많은 필름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사진이랍니다.”


프리랜서 사진가가 되고 싶어서 로스앤젤레스에 가서야 카메라를 어떻게 쥐는지 배웠다. 검은색이 많은 들어간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의뢰 받아 밤에 선셋 대로를 지나 나이트 클럽에 가는 사람들을 찍는 작업을 했다. 궁극적으로는 포토 저널리스트를 꿈꿨다. 그는 다시 뉴욕에 갔다. 포토 저널리스트처럼 보이고 싶어서 괜히 트렌치코트를 입고 검은색 라이카를 고집했다. 1967년 뉴욕에서 찍은 ‘안녕 LA’를 매그넘 에이전시에 보내면서 포토 저널리스트가 됐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오히려 정보를 덜 담고 있는 사진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로버트 프랭크를 만났다. “그가 제게 영화작업을 제안했어요. 그러면서 ‘반드시 독창적인 사람이 되어야 해. 너 자신이 되어야 해. 네가 동경하는 사람들을 따라하면 안돼’라고 말해줬어요.” 로버트 프랭크와의 만남 이후 그의 사진은 변했다.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찍기 시작했다. 69년까지, 사진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진집을 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첫 사진집인 < 몽유병자The Somnambulist >를 냈다. 꿈을 꿀 때 꿈꾸는 사람이 지상의 어딘가에 나타난다는 상상에서 촉발된, 꿈꾸는 사람의 두 번째 자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첼시의 호텔에서 살면서 3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라이카 카메라 3개 중에 2개는 전당포에 잡히고 5개월 치 호텔비를 밀렸지만 어떻게든 책을 내겠다는 의지로 발간했다. 3개월 후 그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에 두 번째, 세 번째 책까지 시리즈로 냈다. “관능적인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피사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가 필요하죠.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줄을 더합니다. 하지만 조각을 만들 때는 완성하기 위해 계속 빼내죠. 저는 뺍니다. 저에게 사진은 빼기 입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바다의 날들Days at Sea>이 완성되고, 랄프 깁슨은 자신만의 문체를 가진 사진가로 인정받는다.


지난 30~40년 동안 그는 초현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많은 사진을 찍었다. 부인과 친구의 누드사진 촬영에 열중하고,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즈와 기타에 관한 책 < Light Strings >을 만들었다. 헬무트 뉴튼을 추모하기 위한 패션 사진(커프스를 차고 만년필을 쥔 남자의 손)을 찍으면서 이집트나 아프리카의 탈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55년 동안 고수하던 필름이 아닌 라이카의 디지털 카메라로도 촬영한다. 예술학부생처럼 매일 사진을 찍고, 보그와도 일한다. “오래 전부터 기타를 쳤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는 기타에 대해 진지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타연주와 함께 비디오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여덟 명의 무용수와 함께하는 발레 비디오입니다. 10여 년 전 찍었던 것인데 아직 작업 중인 영상이에요. 완성이 되면 뉴욕의 아주 큰 갤러리에서 프로젝터 여덟 개를 놓고 상영할 겁니다”


랄프 깁슨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고 기타를 맸다. 어떤 조명도 없었다. 기타를 치는 그가 입은 흰 셔츠 위로 영상이 번졌다. 때로는 구름과 바다의 물결이 흐르고 성난 눈송이가 점멸했다. 70세를 훌쩍 넘긴 거장이 새롭게 나아가려는 미래를 세미나에 모인 사람들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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