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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칼럼

아카데미 커뮤니티 포커스 칼럼

어느 잡상인의 애환

상상지기 2017.03.13 144

 

※ 아래의 글은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스토리텔링워크숍_ 시나리오입문과정> 21기 과정의 결과물로, 수강생의 동의 하에 게시되었으며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모든 글의 내용은 해당 저작권자에게 귀속되며,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변경하거나 도용할 수 없습니다.

 

 

 

 

어느 잡상인의 애환

 

GLO 조민곤 作

 

 

 S#1. 어느 지하철 승강장 안.
 
 어느 지하철 승강장 안. 지하철 의자 가장자리에 앉은 한 남자가 보인다. 남자의 오른편엔 파란색 핀박스가 실린 철제 카트가 서있는데 그 높이는 남자의  허리춤에 닿을 정도다. 박스엔 간단하게 비닐 포장된 몇 가지 디자인의 장갑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 위로는 제품을 설명하는 문구와 여러 디자인의 장갑이 그려진 안내판이 보인다. [스마트폰 사용가능 고급 장갑, 3000원]

 

 남자는 45도 정도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만 한 노트를 손에 쥐고 바라보고 있다.  노트에는 ‘ 승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여러분께 정말 필요한 좋은 소식을 한 가지를 전해드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라는 멘트가 적혀있고, 남자는 적혀있는 멘트를 작은 소리로 구두로 읽고 있다. 노트를 보았다가, 허공을 보기를 반복하지만 입은 계속해서 중얼중얼. 멘트를 암기하려는 듯, 표정은 조금 진지하다. 약간 긴장해 있는 듯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중하는 모습이다. 간간히 주변을 의식하고 시선을 돌리지만 입은 계속해서 멘트를 왼다. 남자의 앞으로는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먼발치의 한 커플은 은근히 남자를 쳐다보면서 뭔가를 수군덕거린다. 


 그런 커플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년의 남자. 지하철 잡상인 강현식이다.

 

강현식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주변 눈치를 제법 살피면서) 승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여러분께 정말 필요한 좋은 소식 한 가지를 전해드리기 위해...

           계속해서 멘트를 중얼거리는 현식. 갑자기 지하철 안내방송 나온다.

방  송   승객 여러분, 지금 의정부, 의정부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노란선 안쪽으로 한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을 들은 현식. 보던 노트를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른손으로는 카트의 손잡이를 움켜쥔다. 열차는 곧 특유의 굉음을 내면서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콰과과가광과과고광~’. 그러나 선뜻 승강장 앞쪽으로 향하지 못하는 현식. 현식은 수평높이로부터 아주 조금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말없이 의자 앞에 잠시간 서 있는다. 현식의 시선으로 승객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광경이 보이고, 그 중에는 아까 현식을 보며 수군덕거리는 커플도 보인다. 커플 중 현식과 눈이 마주친 여자는 현식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고 열차로 들어간다. 열차 출발하면 내린 승객들이 계단으로 모두 빠져나가고 승강장은 횅해진다. 마치 CCTV로 보는 것 같이 사선의 방향으로 보이는 현식의 옆모습. 횅해진 승강장  만큼이나, 쓸쓸해 보인다. 노트를 안주머니에서 다시 꺼내는 현식. 다시 의자에 앉는다. 이후 지하철이 승강장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모습이 수차례 화면을 통해 보이지만 현식, 쉽사리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한다.

 

 S#2. 어느 지하철 승강장 안 ~ 열차 안.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는 현식.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손에는 노트가 없다. 중얼거리던 입은 닫혀있다. 단지 앉은 자세로 카트의 손잡이를 쥔 채 지하철이 들어오는 정면방향을 결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들리는 좀 전과 같은 멘트의 지하철 안내방송. 지하철이 들어오고 승객들 타고 내린다. 줄서서 기다리던 승객들이 모두 탑승하자. 잠시 머뭇하던 현식. 작심한 듯 손에 쥐고 있던 카트를 ‘우당탕’ 끌면서 잽싸게 열차로 탑승한다. 지하철에는 좌석에 모두 사람들이 앉아있고 적은 수의 인원들만이 손잡이를 잡고 서있다. 그 모습이 현식의 시점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며, 그 중에 몇몇은 이어폰을 끼고 있다. 그런 승객들을 잠시 쳐다보던 현식은 손에 쥔 카트를 끌면서 서있는 사람들을 재치고 지하철의 가장 중간지점을 향해 걷는다.

 

강현식  (조용한 목소리로)아이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카트를 끌고 이동하며 살짝씩 부딪히는 주변사람들에게 조촐한 사과의 말을  전달하는 현식. 이내 열차 정 중앙에 도달하여 선다. 그러고는 주변을 의식하는 듯 괜히 헛기침을 두어 번 한다. 긴장한 모습.

 

강현식  (헛기침)에헴, 에헴.

 

 헛기침을 해봐야 따로 시선을 주지 않는 승객들.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조금 민망한 현식. 결심한 듯 말을 꺼낸다.

 

강현식  (다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네, 승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가 인사드리는 이유는 여러분께 정말 필요한 좋은 소식 한 가지를 전해드리기 위해...
 
 현식이 이제 막 멘트를 시작하려하는 순간. 지하철 안내 방송 나온다.

 

방  송  열차 출입문 닫겠습니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남자. 갑자기 깨더니 열차 천장의 안내화면에 ‘신도림’ 이라는 문구를 보고는 닫히려고 하는 출입문을 향해 별안간 뛰어간다. 갑자기 뛰어가느라 현식과 어깨가 부딪힌다. 예상하지 못한 현식. 발이 꼬이며 뒤로 나자빠지고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카트마저 덩달아 자빠진다.
 ‘우당탕탕’

 현식 바닥에 자빠지고, 카트 안에 담겨 있던 비닐포장 장갑들 바닥에 흩뿌려진다. 카트가 ‘쾅’하고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에 승객들 잠시 쓰러진 현식 쪽을 쳐다보지만, 크게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는 곧 다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긴다.

 

강현식  (신음 소리를 내며) 아이고마,,,

 

 비닐 포장된 장갑이 흩뿌려진 바닥을 뒹구는 현식. ‘아’, ‘아’ 하며 신음소리를 약간 낸다. 바닥에 떨어질 때 짚은 왼 손목을 삔 듯. 잠시간 고통스러워하는 현식. 곧 정신을 차린 후 주변을 보니 장갑들이 처량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다. 현식 다친 왼 손목이 불편한 듯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일어서고는 오른손으로 장갑을 주어 담기 시작한다. 승객들 힐끗 힐끗 현식을 쳐다보기는 하지만 도와주진 않는다. 현식 처량하게 장갑을 계속 주어 담는다.

 

방  송  이번에 정차할 곳은 영등포, 영등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지하철 어느덧 영등포역에 도착한다. 출입문이 열릴 때쯤 장갑을 거의 다 주은 현식. 문이 열리자 좀 더 급하게 장갑을 줍는다. 곧 ‘출입문 닫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조금 당황하는 모습으로 줍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문이 닫히기 전 겨우 장갑을 다 주은 현식, 주변 시선을 회피하며 카트를 끌고 출입문 밖으로 재빠르게 나가려 하는데, 절묘한 타이밍으로 닫히는 출입문에 카트가 낀다. 현식 당황한다. 낑낑 거리며 카트를 문에서 빼보려는 현식. 하지만 튀어나온 바퀴가 걸려서 전혀 빠지질 않는다. 승객들 낑낑거리는 현식을 다시금 쳐다본다. 열차 밖에서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현식의 모습 뒤로 저 먼발치, 열차 맨 앞 칸 제어실에서 상반신만 문밖으로 빼꼼이 내민 기장이 무전으로 뭐라 뭐라 하는 모습이 보이고 곧 열차 문이 다시 열린다. 그러자 카트를 당겨 빼던 관성에 의해 현식 튕겨져 나간다. 자빠질 뻔하지만 겨우 겨우 균형을 유지하며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는다. 열차는 승강장을 빠져나간다. 현식, 좀 전에 지하철 안에서 자빠져 더러워진 옷을 손으로 툴툴 털더니. 카트를 끌고 눈에 보이는 벤치로 가 털썩 앉는다. 앉은 채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가 삔 손목이 아픈지 담배곽을 손에 쥔 채로. 왼 손목을 주무른다. 그러다 담배 피기를 체념한 듯이, 두 손을 다리 사이 아래로 떨구고는 크게 한숨을 내 쉰다.

 

강현식  (깊은 한숨) 하아...


 S#3 어느 지하철 열차 안.


 지하철 열차 중앙에 카트를 세우고 서있는 현식. 왼 손목에는 파스가 붙여져 있다. 승객들 듬성 듬성 자리에 앉아있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강현식  (말을 더듬으며) 승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 오늘은.. 제가.. 여러분께 정말 필요한 그.. 좋은 소식 ! 좋은 소식 한 가지를 전해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입을 땐 현식. 어딘가 어설프고, 시선은 불안하다.

 

강현식  (떨리는 목소리, 장갑을 들어 보이며) 이 제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날씨는 추워지고, 또,, 바람도 많이 불고,, 그.. 날씨 많이 추우시죠? 이렇게 추운 날씨에 문자! 카톡! 편하게 쓰시라고 그 스마트폰 전용~ 장갑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책을 읽고 있던 한 여자. 시끄럽다는 듯 현식을 노려본다. 꽤 날카로운 인상. 얼굴을 찌뿌린 여자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꼽고는 다시 책을 본다.

 

강현식  (여자가 시야에 들어오자 당황하는 모습으로) 그, 제품을 꼭 사실 필요~까지는 없으므로(시선 돌린다.) 한 번 그냥 구경하고 싶으신 분들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멘트를 마친 현식. 카트를 통째로 끌고 파스를 붙인 손으로 장갑 몇 개를 들며 열차 안을 왔다 갔다 거리기 시작한다. 반쯤 굽은 허리로 승객들을 한명씩 쳐다보지만 사겠다는 사람은 없다. 한 바퀴를 돌아도 반응이 없자 현식, 그대로 다음 칸으로 건너간다.


S#4 어느 지하철 안.
 
 또 다른 열차 안에 선 현식. 여전히 긴장한 모습이다.

 

강현식  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양해 무릅쓰고 여러분께 좋은 상품..

 

여 자1  (무지하게 큰 목소리로) 여보세요?

 

 현식이 멘트를 날리려 하자. 멀찍이 자리에 앉아있는 한 여자. 무지막지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현식의 목소리가 여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강현식  (살짝 놀라며 여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 좋은 상품을 소개 시켜드리기..


여 자1  (여전히 무지막지한 목소리로) 어? 그래 영규 엄마.


강현식  (목소리를 높이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 제품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여 자1  아 그럼 당연하지 ! 어 내일 저녁에? 그래, 그래. 어 그때 애 아빠 없을 거야. (화통하게 웃는다.) 하하하하하. 영규 엄마도 참. 별 소릴 다하네. 그래 알았어. 내일 봐.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자꾸 묻히는 현식. 안쓰러운 모습이다. 현식이 선 자리에서 머지 않는 자리에 앉은 두 명의 여고생. 현식을 힐끔 힐끔 쳐다보면서 키득거린다.

 

S#5 어느 지하철 안.
 
 현식, 비닐 포장된 장갑을 들고 열차 안을 돌아다닌다.

 

강현식  강 추위에도 걱정 없는, 스마트폰 전용 장갑 3000원입니다. 3000원.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 갑자기 현식을 부른다.

 

여자 2  아저씨~ 그거 좀 보여줘 봐요.


강현식  아예. 예. (여자에게 장갑을 보여준다.)


여자 2  (시큰둥하게) 에이, 디자인이 영 아니다.


강현식  아 이게 디자인은 이래 마음에 안 드실지 모르겠지만, 진짜 따뜻하고 스마트폰도 잘눌려 집니다. ( 장갑을 낀 손으로 스마트폰을 눌러 본다.) 이거 보이시죠?


여자 2  아니 뭐 3000원 짜리가 따뜻하면 얼마나 따뜻 할라고~ 됐어요.


강현식  아 그러지 마시고, 한 번 껴보세요. 진짜 따뜻합니다.


여자 2  (불쾌해 하며) 아, 이 아저씨가 왜이래? 안 산다니까요?

 

 여자, 약간 억지를 부리는 현식과 작은 실갱이를 하다가 장갑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다.

 

강현식  (기죽은 듯이) 아예, 죄송합니다.

 

 현식, 떨어진 장갑을 주워 카트에 담더니, 그대로 다음 칸으로 빠져나간다.

 


S#6 지하철역 근처 어느 포장마차. 밤.

 

 카메라 정면으로 현식 보인다. 멀뚱한 표정으로 오뎅을 먹고 있는 현식. 3개를 먹고 4개째를 먹으려고 하다가. 포장마차 주인에게 묻는다.

 

강현식  사장님, 오뎅 하나에 얼맙니까?


사  장  700원이요.
 
 현식,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지폐가 2000원이 전부다.

 

강현식  아이고, 오뎅 값이 많이 올랐네. 사장님 딱 100원이 모질라네, 이거 우짜죠?


사  장  (퉁명스럽게) 100원 깎아 드릴게요.


강현식  (당황스러워 하며) 감사합니다.

 

 현식 사장에게 2천원을 건낸다. 사장. 뭔가 못마땅해 보이지만 아무 말하지 않는다. 현식 미안하다는 듯이 꾸벅 인사하고 포장마차를 빠져나온다.

 

S#7 어느 지하철 열차 안(맨 끝 차량)
 
 현식. 지하철 열차 안 좌석에 앉아있다. 반대편 창을 통해 비치는 현식의  얼굴은 약간 멍한 표정. 열차는 고요하다.
 고요한 순간. 옆 열차와 통로로 연결되는 문이 열리고. 카트를 끈 잡상인  한명이 들어온다. 거침없는 걸음으로 걸어와 지하철 중앙에 자리 잡으며 카트를  미끄러뜨리듯 탁 자신 앞에 세우는 잡상인.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잡상인  (거침없는 목소리)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승객여러분께 잠시 양해의 말씀 드리면서 오늘 여러분들이 시중에서 쉽게 접해보지 못할 아이디어 상품. 누구나 쉽게 실을 바늘에 재빠르고 또 간편하게 넣을 수 있는 반지고리 세트. 신개념 반지고리 세트를 소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쾌하고 거침없는 잡상인의 화법. 그는 익숙한 손동작으로 허리춤에 찬 전대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어 승객들에게 제품을 시연해 보인다. 시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좌우로 옮기며 설명하던 잡상인은 아예 선 자리를 벗어나 지하철 끝과 끝을 돌아다니며 승객들에게 제품을 설명한다. 자신의 앞을 지나가며 제품을 설명하는 잡상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현식. 신기하다는 듯 시선이 잡상인의 뒤를 따라간다. 그러다 잡상인이 지하철 끝을 찍고 돌아서자 쳐다보지 않은 척 시선을 다시 숨긴 다.
 
잡상인  본 제품은 얼마 전까지 백화점에서 5000원에 판매되던 제품으로 회사 사정상 현재 특별가인 1000원, 1000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자리에서 조용히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제품을 가지고 자리로 찾아 가겠습니다.

 

여자 3 (쩌렁쩌렁하게) 아저씨 여기 나 하나 보여 줘봐요.
 
 자리에 앉아있던 한 여자가 잡상인에게 물건을 요청한다. 물건을 하나 가지고 여자에게 다가가는 잡상인. 제품을 건네준다. 여자, 약간 의심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제품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여자 3  (의심하듯) 이거 싸구려 아니에요?


잡상인  (확신에 찬 목소리) 정품입니다. 얼마 전까지 백화점에서 팔던 거에요.


여자 3  (여전히 의심스럽게) 진짜에요?


잡상인  (당당한 목소리) 그럼요. 한 번 해보세요.

 

 여자는 잡상인이 파는 물건의 샘플을 만져보더니 덥석 실을 바늘에 꽤 보인다. 의심스럽던 표정이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여자 3  웜매. 그냥 들어가 버리네 (깔깔깔 웃는다.) 아저씨 나 2개만 살게.

 

 여자 5천원을 잡상인에게 건 내자 잡상인 전대에서 고무줄로 묶어둔 천 원짜리 돈 뭉치를 통째로 꺼내어 세장을 세어 끄집어내 여자에게 건넨다. 현식, 시기와 동경의 묘한 경계를 오가는 것 같은 표정으로 잔돈을 세어 건네주는 손짓마저 자연스럽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잡상인을 힐끗 힐끗 쳐다본다.

 

여자 4  아저씨~ 나도 한 개만 좀 주세요.

 

 여자가 물건을 2개 구매하자. 지하철 여기저기서 2~3명의 사람이 자신도 물건을 사겠다고 손을 든다. 잡상인은 그런 사람들에게 중앙에 세워둔 카트에서 물건을 가져다 건네주고 돈을 받는다. 다시 중앙의 카트로 돌아온 잡상인은 받은 돈을 다시 세어보고는 고무줄로 묶어둔 아까 그 돈뭉치에 받은 돈을 같이 뭉친다. 열차가 이내 다음역에 도착하고 잡상인은 카트를 끌고 열차에서 내린다. 계속해서 눈치를 보며 잡상인을 바라보던 현식. 갑자기 잡상인을 따라 열차에서 잽싸게 내린다. 그러고는 잡상인을 불러 세운다.

 

강현식  (다급하게) 저기요 ~!

 

 열차에서 내려 제 갈길 가던 잡상인. 현식이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이끌리듯 잡상인을 부르고 본 현식.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떠오르지 않는다.

 

강현식  (머뭇하면서) 저, 그게,,,

 

잡상인. 멀뚱한 표정. ‘이 사람 뭐지?’ 하는 눈빛으로 현식을 쳐다본다.

 


S#8 지하철 승강장 벤치.

 

 강현식과 잡상인 승강장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잡상인  그러니까 멘트가 절대 끊기면 안돼요. 기 싸움이라니까. 혼이 실린 구라. 이게 사람들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당당하면 그런가보다 하게 돼있어요. 알고도 속는 거지.


강현식  좀 아까 그 물건. 진짜로 얼마 전까지 백화점에서 팔던 겁니까?


잡상인  이거요? (반지고리를 들어보인다) 백화점에서 안판지 한 3년은 됐지.

 

현식. 어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강현식  3년? 그럼 마 속여서 파는 겁니까.


잡상인  (어이없다는 듯.)아저씨. 조미료 안치는 식당 본적 있소? 다 그런 거지 뭘. 알고도 속는 거라니까?

 

 현식 가만히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강현식  아까 보니까네. 마 한 칸에서 서너개씩 물건 막 파시던데예, 우째 하면, 그르케 막 몇 명씩 물건 산다고 손을 번쩍 번쩍 듭니까?


잡상인  (약간 거만한 태도로) 아저씨 구역이 어디에요?


강현식  저는 마, 저쪽 1호선 신도림 서울역 구간입니다.


잡상인  뭐 내가 도는 구역이랑 다른 것 같으니까 몇 가지 알려드릴게.

 

 현식, 솔깃한 표정을 짓는다.

 

잡상인  첫째, 태도. 좀 아까 말했듯이 절대 주눅들면 안되요. 뭐 이거야 아저씨도 몇 번 해봤으니 당연히 알겠지만, 마음만 가지고는 안되. 멘트가 막 기계적으로 쏟아져 나오듯이 어? 쉬지 않고 떠들어야 된다고요. 물건이 뭐 어쨌건 간에 지하철에 물건 사러 온 거 아니잖아? 일단 비루해 보이면 안돼. 그러면 지는거야.

 

 현식 빨려 들어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안주머니에 있던 노트를 잽싸게 꺼내 잡상인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한다.

 

잡상인  둘째, 물건. 뭐 당당하고 인상 좋다고 해도 양말이나 면도기 같은 거 가져오면 쳐다도 안봅니다. 물건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희소성이 있어야 되거든 희소성. 아저씨. 다이소 알죠. 다이소? 요즘엔 온 동네가 다 다이소거든? 거기서 볼 수 있는 걸 팔면 절대로 못 팔아. 신기한거. 어? 희안한거~

 

 잡상인. 옆에 세워둔 카트에서 팔던 반지고리 세트를 꺼내더니 현식이 보라는 듯 흔들어대며 손바닥을 친다.
 
잡상인  (자신감에 찬 목소리) 이거 이거 반지고리 이런 거. 매장에 걸려있어도 이게 뭐하는 놈인지 도통 관심도 안가거든? 써보기 전에는 별로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
 근데 한번 딱 쳐다보면 뭔가 신기~하면서도 관심 가는 거. 이런 걸 팔아야 돼요. 이런걸.(전대에서 반지고리 샘플을 꺼내 실을 잽싸게 바늘에 끼워 보이며) 이봐. 이봐. 얼마나 잘 들어가.

 

 현식. 노트와 잡상인을 번갈아 보면서 계속해서 노트에 끄적끄적 거린다.

 

잡상인  마지막 군중심리.


강현식  (궁금하다는 듯) 군중심리?


잡상인  예. 군중심리. 일명 바람잡이. 이, 파는 사람이 딱 당당하고 물건도 희안하니 뭔가 맘에 들고 해도, 결국에 산다는 사람이 없으면 못 사거든요? 웬만하면? 왜? 창피하니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혼자 튀는거 안 좋아해. 딴 사람들 쳐다보는 것도 안 좋아하고. 그래서 우리는 공범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공범.


강현식  공범은 또 뭡니까?

잡상인  (주변을 살짝 쳐다보고는 조금 조용한 목소리로) 아까 물건 2개 사가던 아줌마 있지요?


강현식  (모르겠다는 듯) 네.


잡상인  사실 그 아줌마가 나랑 동업자에요. 나는 물건 팔고. 아줌마는 바람 잡고. 말하자면 팀플레이지 팀플레이. 어? 아줌마는 딱 물건사고 열차 밖으로 이동하고, 나는 열차 안에서 계속 옮겨 다니고. 그렇게 누가 처음에 물건을 사줘야 사람들이 ‘아 원래 다들 이렇게 사는가 보다’하고 지갑 꺼내는 거요. 지갑. 이게 제일 중요해.

 

 현식. 납득이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머리아래 허공으로 가져간다.

 

잡상인  보아하니, 일한지도 얼마 안 된 것 같고 고생 꽤나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내 동업자 정신이 생겨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행운이야 아저씨. 내가 마침 지금 들어가는 길이라. 아무튼 고생하시유.

 

 잡상인. 할 말 다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식으로부터 멀어진다.

 

강현식  (중얼거리듯) 팀플레이라...

 

 현식.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연락처에서 ‘동철’을 검색한 후 전화를 건다.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린다. 곧 전화가 연결된다.
 

강현식  어 동철아? 너 지금 어데고?
 

 

S#9. 어느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

 

 현식과 동철 어느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캔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현식의 전화를 받고 나온 동철은 현식과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다 실직된 사내다.

 

김동철  (놀란 듯이) 엥? 그래서 나보고 바람잡이를 하란 말입니까 형님?


강현식  그래 임마.


김동철  아니 뭐 하고 많은 일 중에 하필 왜 잡상인 입니까 잡상인.


강현식  얌마, 잡상인이면 어떻고 뭐면 어떻냐. 많이 벌면 장땡이지.


김동철  에이, 그래도 이건 싫습니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가오가.


강현식  이새끼가 처자식 없다고 뭉글뭉글 한거 바라 이자식. 네가 애 둘 키워바라. 임마. 그런 소리가 입에서 나오나 자식아. 너 복직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나 본데, 뉴스 좀 바라 임마 뉴스좀. 건설 경기 다 죽었다 임마.


김동철  (대꾸하지 못한다) ...


강현식  아무튼 간에 잔말 말고, 내일 10시 신도림역으로 오라 알았나?


김동철  에이 증말...


S#10 신도림역 아침 10시.

 

 아침 10시 신도림역. 현식 동철을 기다리고 있다. 동철 약속한 시간이 10분정도  뒤에 먼발치서 모습이 보인다.

 

강현식  (혀를 차며) 저거 저거, (소리를 치며) 퍼뜩 안온나!

 

 동철, 현식의 말을 듣더니 마지못해 뛰는 척하며 현식 앞으로 온다.

 

강현식  (다그치면서) 빨랑빨랑 안오나 자슥아.


김동철  아이고, 10분 늦었습니다. 형님 10분


강현식  됐고, 멘트는 잘 외워왔나?


김동철  아니 외우긴 외웠는데, 낯간지러워서 영...

 

강현식  낯이고 밤이건 간에 무조건 잘 해라이. 쪽팔리면 지는기라.

 

 현식 가져온 카트를 끌고 앞장서고 동철 뒤를 따른다. 현식의 카트에는 반지고리  세트가 수북이 쌓여있다.

 

S#11 지하철 열차 안.

 

 현식 열차 중앙에 카트를 세워 놓고 멘트를 치기 시작한다. 동철 현식과 조금 떨어진 열차 자리에 앉아 현식을 약간 의식하듯 앉아있다. 현식, 멘트를 치기 시작한다. 이전보다 조금 자신감 있어 보인다.

 

강현식  예, 손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손님여러분께 한 가지 희소식, 희소식 하나 전달해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현식 허리춤에 차고 있는 전대에서 미리 준비해둔 바늘과 실, 제품 샘플을 꺼낸다.

 

강현식 우리 주부님들, 평소에 바느질 하실 때 눈도 침침하니 바늘에 실 끼우기 참 어려우시죠? 요놈 하나면 있으면 그런 걱정이 딱! 사라집니다. 제품을 딱 요렇게  잡으시고,,, 옆에 바늘이랑 실만 딱 꽂아 주고, 이렇게 확 땡겨 주시면 뭐 구멍을  쳐다볼 것도 없이 실이 솨악! 하고 바늘구멍에 들어가 버립니다.

 

 현식, 바늘에 끼워진 실을 잡고 줄넘기를 하듯 손으로 휭휭 돌려댄다. 줄 끝에 걸린 바늘이 허공을 횅횅 돌면, 지하철 내의 승객들 신기하게 쳐다본다.


강현식  요놈이 원래 백화점에서 얼마 전까지 5000원에 판매되던 제품인데, 회사 사정상  오늘 특별히 여러분께 딱 1000원짜리 한 장. 딱 한 장에 드리고 있습니다.

 

 현식의 멘트가 끝나자 물건을 몇 개 들고 열차 안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동철의 앞을 지나면서 동철과 눈을 마주친다. 동철, 알았다는 듯 눈빛을 보이 면서 동철을 부른다.

 

김동철  (뭔가 어색한 느낌으로)아저씨~ 여기 물건 좀 보여주세요~


강현식  (역시 뭔가 어색한 느낌으로)아이고 네~ 갑니다.


김동철  (과장된 발연기 느낌으로)이거 진짜 잘 껴지는 겁니까? (에헴) 뭐 바늘에 실 끼우 는거 얼마나 어렵다고 ~!


강현식  그라지 마시고 요놈으로 딱 한 번 껴 보십시오. 들어가는 느낌이 다릅니다.

 

 동철과 현식. 뭔가 어색해 보이는 듯, 자연스러워 보이는 듯, 경계를 넘나드는 연 기를 펼친다. 주변사람들 누구는 재밌는 듯, 누구는 궁금하다는 듯 둘을 쳐다본다.

 

김동철  (깜짝 놀래하며) 아이고 이거 그냥 확 들어가 버리네? 이거 우리 마누라 갔다 주면 좋아하겠소~ 아니 어제도 제가 딱 집에 들어가지고 신발을 딱 벗고 들어가니깐 양 말이 빵꾸가 나있는겁니다. 그래가지고 마누라한테 양말 좀 꼬매 놓으라고 한마디  하니까는 뭐 눈이 침침해서 바늘에 실이 잘 안들어간다느니 뭐 양말 하나 그거 얼 마나 한다고 꼬매냐느니 잔소리를 해대는데, 이거만 있으면 뭐~

 
 낯 간지럽다던 동철. 있지도 않은 부인을 들먹이면서 연신 과장된 연기를 펼친다. 동철의 연기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지려고 하자. 현식. 그만하라는 듯 무거운 눈빛을 신호로 보낸다. 동철. 알았다는 듯, 말을 정리한다.

 

김동철  (급하게 말을 끝맺으며)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겠네. (공손한 말투로) 요거  2개만 주세요.


강현식  (약간 심각하던 표정이 풀리며) 아이고 고맙습니다.

 

 현식, 중앙에 세워둔 카트에서 제품을 2개 가져와 동철에게 전달한다. 동철, 미리  준비해둔 5천원을 현식에게 건낸다. 현식은 미리 인출해둔 천원 짜리 다발에서 천 원짜리 3장을 꺼내 동철에게 전해준다.

 

김동철  (쾌활하게 웃으며) 많이 파세요 ~

 

 현식 동철에게 받은 5천원을 전대에 집어넣는데, 먼발치서 현식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여 자4  아저씨 나도 하나만 주세요~

 

 현식 올 것이 왔다는 듯 뒤를 돌면서 동시에 동철에게 작은 미소를 보인다. 동철 역시 화답하듯 곁눈질로 현식에게 눈웃음을 보낸다.

 

강현식  (반가운 목소리로)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동철과 승객 한명이 물건을 구매하자 지하철 여기저기서 물건을 달라는 사람이 목소리를 키운다. 중년의 여자와 남자. 심지어 학생까지도 현식을 부른다. 현식 물건을 가져다주고 돈을 받기 바쁘다.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이때 자리에 있던 한 남학생이 불쾌한 표정으로 현식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스마트 폰을 꺼내 무거운 표정으로 뭔가를 적기 시작한다.
지하철 어느덧 다음역에 정차하고 문이 열린다. 문 열리자 동철 계획한대로 열차를  빠져나가 다음 칸으로 향하고, 현식은 열차안에서 다음칸으로 이동한다. 창을 통해 마주보는 서로의 표정.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동철 걸어가면서 문자로 현식 에게 문자를 보낸다. 현식, 진동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보자 동철이 보낸 메시지다.

 

김동철  [ 형님, 이거 대박 나겠는데요 ]

 

 현식, 억지로 웃음을 참는다.

 


S#12 어느 열차 안. 몇 차례 장면이 바뀌지만 계속 열차안.

 

 현식과 동철, 점점 더 합이 잘 맞아가고 계속해서 물건 판매한다. 동철의 연기 점점 더 자연스러워 지고, 현식 물건을 살 사람이 한명(동철)은 확보 되어있다는 안도감에 멘트와 행동이 점점 몸에 익어간다.

 

S#13 어느 열차 안.

 

 현식 열차안 승객 누군가에게 물건을 팔고 있다.

 

남자 1  얼마라고 하셨죠?


강현식  (웃으며)네네, 천원짜리 딱 한 장입니다.

 

 현식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동철 현식이 남자에게 물건을 주고 돈을 받는  광경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데 갑자기 열차 옆칸으로 이동하는 문이 ‘철컹’ 하고 열 린다. 고개가 현식 쪽에서 문 쪽으로 돌려지는 동철. 안색이 굳어진다. 얼 굴이 굳어진 동 철의 앉은 자리 앞으로 공적인 차림을 한 남자 둘이 뒷모습을 보 이며 지나간다.
 
강현식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받으며) 아이고 고맙습니다.

 

 승객에게 돈을 받은 현식 뒤를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본다. 그러더니 표정이 어두워  진다. 화면 현식의 시선으로 전환되니 요원복장을 한 남자 두 명이 눈앞에 떡하니  서있다.

 

보안관  안녕하십니까. 신고가 들어와서요.


S#14 현식과 동철이 처음 합을 맞췄던 열차 안.

 

 아까 현식과 동철이 처음 합을 맞췄던 열차 안. 표정을 찌뿌렸던 남학생이 연신 스 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다.

 

남학생  [아, 지하철 잡상인 개시끄러워. 극혐]


친구 1  [야, 그거 신고해. 신고하면 보안관이 와서 잡아감 ㅋㅋㅋ]


남학생  [그런게 있음?ㅋㅋㅋ 당장 실행에 옮기겠어]

 

 남학생의 친구, 카카오톡을 통해 지하철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남학생 번호를 받더니 문자로 신고센터에 신고를 접수한다.

 

남학생  [여기 열차 안에 잡상인 있습니다. 조치 좀 취해주세요.]


센  터  [지하철 호선과 열차번호를 남겨주세요]


남학생  [1호선 6687번 열차입니다.]
          [빨리 좀 조치해 주세요.]


센  터  [바로 조치 취해드리겠습니다.]

 

S#15 지하철 개찰구 밖. 안내 센터 바로 앞.

 

 현식, 개찰구 앞으로 끌려 나온 듯. 카트를 옆에 두고 보안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건장하고 큰 체구를 가진 보안관 앞에 현식, 약간 주눅 든 모습이다.


 동철 그런 현식과 보안관이 보일만한 거리의 기둥 옆에 서성이며 힐끗 힐끗 현식을  쳐다본다.

 

보안관  (담담한 말투로) 일단 여기 명부에 서명 먼저 하시구요. 

 
 현식, 서류철 된 종이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신상정보를 적기 시작한다.

 

보안관  (역시 담담한 말투로) 과태료는 10만원입니다. 지금 주셔도 되고요. 명부 발송해  드리니까 차후에 내셔도 됩니다.


강현식  (놀라면서) 10만원이요? 아니 저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내 요 나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사정하며) 저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보안관  (귀찮다는 듯) 잡상인분들 다 아저씨같이 말합니다. 아저씨만 봐드릴 수 없어요.  (확인하듯) 혹시 일행 있으십니까?


강현식  (동철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동철, 둘의 대화를 들은 건지, 아니면 대충 직감을 한 건지 등을 보이며 반대로 걸 어가고 있다. 뒷모습이 영 초라하다.

 

보안관  있으세요?


강현식 (둘러대듯) 아니요, 뭐 그런 건 없습니다.

 

 현식, 휴대폰 진동이 울리자 주머니에서 꺼내 화면을 열어본다.


 동철의 문자 와있다.

 

김동철  [형님 둘이 죽는 것보다는 한놈만 죽는게 안 낫겠습니까. 죄송합니데이 ^^;;]

 

 현식, 얼굴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현식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왕훈  야! 니 현식이 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뒤를 돌아보는 현식.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정장과 코트를 입은 사내가 보인다. 현식의 고등학교 동창 왕훈이다.


S#16 지하철 역안(개찰구 밖) 자판기 옆 벤치

 

 현식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꺼낸다. 파스를 붙인 왼손에는 이미 커피 한잔이 손 에 잡혀 있다. 오른손으로 커피를 꺼낸 현식은 커피를 그대로 왕훈에게 전해준다.

 

강현식  (목소리 높이며) 야, 이거 얼마만이가?


오왕훈  야 10년 전에 동창회 때 보고 처음인 것 같다. 잘 지냈나?


강현식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뭐 그냥 저냥 벌어먹고 사는거 아니겠나? 너는 거 다니던  회사 아직 다니고 있제? 승진 많이 했겠네~


오왕훈  많이는 무슨 그때 한참 과장이었는데, 아직도 차장이다. 차장.


강현식  (호탕하게 웃으며) 과장이고 차장이고, 뭐 붙어만 있으면 되는거 아니겠나? 하하하


오왕훈  아이고~ 말도 마라 임마. 바빠서 죽을 맛이다. 마누라 생각, 애들 생각 하면서 버 티는 거지, 뭐 이게 사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현식과 왕훈, 시선이 서로 어긋난 채로 잠시 침묵해 있다가. 커피를 한 모금씩 들 이킨다. 현식은 씁쓸한 웃음을, 왕훈은 기운없는 모습이다.

 

오왕훈  아 근데, 아까 그 멀대 같은 놈들하고는 뭔 이야기 한거고?

 

 현식 씁쓸하게 웃고 있던 표정이 굳어진다.

 

강현식  (뭔가 과장되게) 아, 그놈들? 아 그거 뭐 여기 왔다갔다하면 한번 씩 마주치는 놈 들이다. 별거 아니여.


오왕훈  (뭔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빤히 현식을 쳐다본다.)


강현식  (둘러대듯)아 사실, 회사 때려 치고 어? 장사 차렸다 임마. (우렁차게) 니도 알겠지 만 내가 또 그 장사꾼 기질이 않있나? 알지?


오왕훈  (잔잔히 웃으며) 고등학교 때, 비 오면 우산 팔러다니고, 졸업식 때면 옆 동네 고등 학교 가서 꽃 팔러 다니고, 생각난다 임마.


강현식  그래 임마, 내가 보니까네, 이 지하철 잡상인들이 딱 보면 좀 비루해 보여도, 잘나 가는 사람들 보면 딱 여유가 있어 보이는 기라. 그거 보니까 장사꾼의 피가 또 막  샘 솟대?(웃어보인다.) 그 뒤로 딱 요건 딱 내일이다 싶어서 딱 내발로 회사 뛰쳐 나온 거 아이가?

 

 현식은 회사에서 쫓겨난 신세였지만, 애둘러 왕훈에게 거짓말을 한다.


 왕훈 역시 그런 현식을 보면서 애써 호응해 준다.

 

오왕훈  그래 임마, 뭐 직업에 귀천이 어딨겠노. 잘 벌면 장 땡이지. 그리고 또 사장님 아이가 사장님?


강현식  (너털 웃음을 지면서) 그래 내가 사장이다. 사장. 허허허허. 내가 여기 발 붙인지  한 몇 달 됐는데, 여기도 나름대로 체계와 원칙이 있다 아이가? 첫째. 태도, 둘째.  물건. 셋째 군중심리.

 

 현식은 자신의 잡상인 경력을 뻥튀기 시키며 어제 만났던 잡상인이 일러준 세 가지  원칙을 마치 자신의 것인 냥 왕훈에게 설명해 댄다. 태도가 어때야 한다느니, 물건 은 어때야 한다느니, 마치 몇 년이나 일한 사람처럼 떠들어 낸다.

 

강현식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게 또 제일 중요한게 바람잡이다 바람잡이, 이게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사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나라 사람? 절대로 안산다. 지하철에 물건  사러온 거 아니잖나? 그래서 바람잡이가 한명 딱~ 따라다니면서 물건 사면서 분위 기 솨악~ 한 번 환기시키는 거짐 마 딱. 그 뭐시냐, 그, 마, 뭐고, 그 마,


오왕훈  (내던지듯) 마케팅?


강현식  그램 마, 마케팅 마케팅 ! (호탕하게 웃는다.)

 

 왕훈과 현식 호방하게 한 판 웃는다. 웃음이 멈추자 잠시간 다시 침묵이 흐른다.  그사이 커피는 다 마시고 없다.

 

강현식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아 근데 왕훈아 니 볼일 있는 거 아이가?


오왕훈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꾸며) 아 맞다. 요 근처에 볼일 있어서 가는 길이었다.


강현식  (미안하다는 듯) 아이고 빨리 가봐야 되는거 아니가. 내 때문에 괜히 늦은 거 아닌 가 모르겠다.

오왕훈  (손사레 치며) 아니다 임마. 금방 간다. 애들은 잘 있지?

강현식  어 그래 뭐, 인제 딸애만 취업시키면 된다. 요새 힘들다 힘들다 해쌌는데, 뭐 뭐가  어떻게 힘든지 내가 알아야 말이지. (허탈하게 웃는다.) 그저 한푼 두푼 벌어가 뒷 바라지 해주는 거 밖에 없지 안그르나?

오왕훈  (미소 지으며) 그라제. 그것 밖에 없제.

 

 현식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딸의 사진을 왕훈에게 보여준다.

 

오왕훈  (감탄하며) 이야~~ 더 예뻐졌네. 시집가도 되겠다 인제.

강현식  (사진을 바라보며 호방하게 웃는다.)

 


S#17 지하철 승강장 안.

 

 지하철 들어오고 있다. 왕훈 현식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오왕훈  (뒤 돌아보며) 현식아 임마. 연락 하그레이. 조만간 또 보자~

강현식  (웃으며) 어 그래~ 조만간 한잔 하자이~! (왕훈 들어가려는걸 붙잡듯) 아 맞다 왕 훈아!

오왕훈  (다시 뒤 돌아보며) 어?

강현식  요놈 가져가라. 마누라 주면 좋아할끼다.

 

 현식 카트에 있던 반지고리 두 개를 왕훈에게 건네준다.
 
오왕훈  (손사레 치며) 됐다 마 파는 걸 임마. 괜찮다.

강현식  (억지로 건네주며) 야 임마 이거 무지 잘 나가는거다. 줄 때 받아라.

오왕훈  (거부하길 포기하면서) 그래 고맙데이. 마누라한테 니 안부 잘 전해줄게.

 

 왕훈 지하철 타고 뒤로 돌아 현식을 바라본다. 현식 내린 사람들에 가려져 얼굴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데, 입가에 미소가 그윽하다. 지하철이 출발하자 현식, 왕훈 에게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지하철 완전히 승강장을 지나가면 입가에 미소를 띄던 현식 다시 무표정해진다. 그 리고 손에 쥐고 있던 카트를 끌고 근처 벤치에 가 앉는다.

 

 현식 벤치에 앉아 카트를 옆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다. 단지 앞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다. 화면에 지하철이 오고 가는 장면이 수차례 반복되고, 사람들이 승강장안 으로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모습이 수차례 반복되지만, 현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약간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스 마트폰을 들고 동철에게 전화를 걸지만 동철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를 내려놓은 현식 이후에도 계속 벤치에 앉아 있는다.

 

S#18 지하철 승강장 안, 열차 안
 

 현식, 여전히 벤치에 앉아있다. 곧 안내방송 나온다.

 

방  송  승객 여러분 지금, 소요산, 소요산 방향으로 가는 1호선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열차 들어온다. 문이 열리면 승객들 먼저 빠져나오고 기다리던 승객 들 열차에 탑승한다. 문이 열린 채로 잠시 대기하던 열차 다시 안내 방송이 나온다.

 

방  송  열차 출입문 닫겠습니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현식,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덜커덩’ 카트를 끌고 급하게 열차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기 직전 겨우 열차에 탑승한다. 열차 가운데 카트를 세우고 선 현식 주변을 둘 러 본다. 현식의 시선으로 승객들이 보인다. 모두들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현식,  잠시간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화두를 던진다.

 

김현식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양해 무릅쓰고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파스를 붙인 현식의 왼손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다.

 

 

-END-

 

 

 

 

 

글. 조민곤 (bmcrank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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